HOME < 제주가이드 < 제주역사  
 
제주도는 지금으로부터 약 200만년전인 신생대 제3기에서 제4기에 이르는 동안 여러차례의 화산활동에 의해 생성된 섬이다. 섬의 중앙에 위치한 한라산 정상에는 화산활동의 분화구인 직경 700m의 백록담이 형성되어 있다.

제주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지는 섬의 북부지방인 제주시와 북제주군 일대에서 선사문화 유적 발견으로 미루어 선사시대부터 원주민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고, 양, 부 3성(三姓)이 건국하였다는 3성신화(三姓神話)가 있으나 확실한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제주의 옛 명칭은 도이(島夷) · 동영주(東瀛州) · 주호(州胡) · 탐모라(耽牟羅) · 섭라(涉羅) · 탁라(竣羅) · 탐라(耽羅) 등 시대에 따라 다르게 불리어 왔다. 이들 명칭중 ‘동영주(東瀛州)’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섬나라’라는 뜻이다.
 

제주도의 개벽신화인 3성신화(三姓神話)에 의하면 태고에 ‘고을나(高乙那)’ , ‘양을나(良乙那)’, ‘부을나(夫乙那)’라고하는 삼신인(三神人)이 한라산 북쪽 모흥혈(毛興穴:현재의 삼성혈) 땅 속에서 솟아나와 가죽옷을 입고 사냥을 하며 살았다.

이들 삼신인들은 ‘벽랑국(碧浪國)’에서 오곡의 씨앗과, 송아지, 망아지 등을 갖고 배를 타고 온 벽랑국의 삼공주를 맞아 혼례를 올리고 오곡의 씨앗을 뿌리고 송아지와 망아지를 치며 날로 번성하여 인간의 세계를 이룩하였다.

 
그후 9백여년이 지난 뒤에 인심이 삼성(三姓) 중에 고(高)씨에게 돌아가 고씨를 왕으로 삼아 국호를 탁라(竣羅)라 하였으며, 백제와 신라와 서로 교류하다 신라가 전국에 강한 세력으로 진출하자 ‘고을나’의 15세 후손인 3형제(후 ·청 ·계)가 배를 타고 신라에 건너가 신라왕으로 부터 성주, 왕자, 도내라는 작위를 받고 국호는 탐라(耽羅)라 개칭하고 자치적인 국가 형태를 유지하였으나 신라 문무왕2년 (서기662년) 신라의 속국이 되었다.
 
삼국을 통일한 고려조에 들어와 고려가 탐라의 고려 귀속을 요구하는 강압에 의하여 고려 태조21년( 938년) 탐라태자 고말로가 고려에 입조하여 성주와 왕자의 직호를 받고 자치권을 인정 받는 고려의 속국이 되었으나, 고려 숙종10년 (서기1105년)에 고려의 중앙집권제 통치하에 들어가 탐라국호가 폐지되고 고려의 일개 지방편제인 탐라군(耽羅郡)이 되었으며 제주(濟州)라는 명칭은 고려 고종때(서기1214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고려왕조가 元나라의 침략을 받아 이에 항거하여 일어난 삼별초가 제주까지 쫓겨 내려와 최후거점으로 항거를 전개 하므로 고려 원종14년 (1273년) 몽고군(蒙古軍)이 제주를 침범해 삼별초를 진압한 후 원나라의 직할통치기구인 탐라총관부에 의해 원의 지배하에 들어가 원의 일본정벌을 위한 병참기지가 되었다. 그 후 원이 쇠퇴하자 고려 공민왕23년 (서기1374년) 최영 장군이 제주에 내려와 몽고군을 토벌하고 1세기에 가까운 원나라의 지배를 종식하였다.
 
조선조에 들어와서 조선 태종3년 (서기1402년) 오랫동안 전래되어 온 성주(星主)·왕자(王子)의 칭호가 폐지되고 조선조 중앙에서 실질적인 행정력을 가진 목사를 두어 제주를 관할 하였다. 태종16년 (서기1416년) 한라산을 경계로 북쪽은 제주라 하여 목사를 두고, 동쪽에 정의현(旌義縣), 서쪽에 대정현(大靜縣) 을 설치해 현감을 두었다. 조선조(朝鮮朝)에 들어서도 제주는 버림받은 오지도서 취급을 받아 조선조의 정객과 학자들의 유배지(流配地)로 이용되었으며, 이때 유배되어 내려온 많은 정객과 학자들의 훈학(訓學)으로 인하여 제주에 유학(儒學)의 보급과 문화에 기여 하였다. 효종4년 (서기1653년)때에 제주도의 유일한 정사문헌(正史文獻)인 " 탐라지(耽羅志) " 가 만들어 졌다. 고종43년 (서기1906년)에 목사를 폐지하고 군수를 두었다. 1910년 정의현·대정현이 제주군으로 합군되는 동시에 추자면(楸子面)이 전남 완도군에서 분리되어 제주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정의군·대정군과 완도군 추자면이 제주군에 병합되어 제주군은 제주도 전역을 관할하게 되었다.
 
조선조 이후 日帝治下를 거쳐 대한민국이 수립되면서 1946년 도제(道制) 실시로 전라남도에서 분리 "道" 로 승격하여 오늘의 濟州道가 되었다. 1948년 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4·3사건이라는 아픈 상처를 겪었으며, 1960년대에 들어와 5.16혁명후 보잘것 없이 낙후되어 있던 도서의 하나인 제주도가 한라산 중턱을 뚫고 섬의 남북을 횡단하는 5.16도로의 개통을 시작으로 도로, 용수, 전력 등 본격적인 제주개발 정책이 추진되고 귤 재배와 관광개발의 노력은 제주도민의 소득증대에 크게 기여 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 서서 제주와 육지부간에 항공편이 취항하고 부산, 목포 등에 카훼리 해상교통편이 운항되어 육지부와의 교통이 크게 좋아지고 신제주와 중문관광단지의 개발 등으로 관광객 유치환경이 급속한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근래에 들어 미국, 소련, 중국, 일본 등 각국의 정상회담이 제주도에서 개최되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지금의 제주도는 국제자유도시로써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관광지이다.